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송전철탑과 싸우고 있는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

 

718. 태풍소식이 들리지만 밀양 상동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역에는 얼마 전 보라마을에서 뵈었던 아주머니 2분이 마중을 나와 계십니다. 고추밭에서 일하다가 급하게 나오셨다고 합니다. 하필 바쁜 농사철에 번거롭게 해드린 것은 아닌지 ... 죄송한 마음으로 상동면 지역의 철탑 예정지로 향했습니다.

 

우선 124번 철탑 부지로 가자고 합니다. 아침에 공사업체에서 인부 몇 명이 트럭을 몰고 현장에 왔고, 지금 주민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 가봐야 한답니다. 좁은 산길에도 과감하게 차를 몰고 다니시는 걸 보니 얼마나 이곳을 자주 찾았는지 알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동네 어르신들이 다들 올라와서 산길에 자리를 펴고 앉았습니다. 19세대 중에 17세대에서 올라와 있으니 한 부락이 몽땅 다 와 있는 거라고 하십니다. 엉성하게 나무계단이 놓인 곳을 따라 한 40분 정도 올라가면 철탑 부지라고 합니다. 공사인부들이 올라갈까봐 아예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농지 가운데에 121번 철탑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 정상 즈음에 122번 철탑이 설 예정입니다. 121번 철탑이 들어설 곳 주변은 논이거나 비닐하우스 단지입니다. 겨우 자동차 두 대가 비껴갈 정도의 길을 사이에 두고 765kV 고압이 흐르는 철탑이 서고, 이 산 저 산으로 두꺼운 전선이 척척 걸쳐져 있는 광경을 상상해 봅니다. 매일 이곳에서 일해야 하는 주민들의 절박하고 억울한 심정이 절로 이해가 됩니다.

 

 

 

 

도곡저수지에 잠시 내렸습니다. 저수지 둘레로 늘어선 산 중턱을 따라 철탑이 설 예정입니다. 오른쪽 사진에서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아래쪽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철탑은 마을로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단장면 용회마을입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데 널찍한 들판과 마을이 둥그스름한 산자락들에 폭 안겨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나 철탑이 마을을 관통하게 됩니다. 워낙 경치가 수려한 마을이라서 13세대가 들어갈 전원주택지가 조성되었는데 이곳도 역시 분양이 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용회마을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느 마을이 그렇듯이 용회마을 주민들도 처음에는 철탑이 들어선다고 하자 의견이 분분하다가 국책사업이라고 하니까 결국 용납을 해 주셨답니다. 하지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도록 하는 조건으로, 너럭바위 뒤쪽으로 넘어간다는 약속을 받았답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에 한전이 이 약속을 어기고 애초에 한전이 계획했던 바로 마을 뒷산을 철탑 예정지로 확정한 것을 알게 되었고, 한전과의 협의를 파기한 첫 번째 마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용회마을 주민들은 절대 못 믿을 한전을 상대로 마을 입구에 천막을 치고 공사를 막고 있습니다.

 

 

마침 초복입니다. 용회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오리백숙으로 힘모으기를 하는 절묘한(?) 시간에 도착한 덕분에 복날 치레를 제대로 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잠시였지만 주민들과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마을 입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초록농활대가 걸어둔 현수막이 주민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었습니다.

 

부북면 외양리 주민들이 차린 1초소에 도착했습니다. 한전으로부터 손배소 소송을 당한 주민들의 이름이 현수막에 적혀 있습니다. 10억짜리 손배소송에, 재산가압류에, 하루에 1백만원씩 물리겠다는 공기업 한전덕분에 이런 현수막도 내걸렸습니다. 한전이 이걸 보고 부끄러워야 하는데 ~ 워낙 파렴치한 집단이라서요.

 

 

초소에서 자동차로 제법 올라가니 129번 철탑 부지가 나옵니다. 큰 나무들이 베어진 곳을 얼마 전 다녀간 탈핵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심어놓은 어린 나무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내려다 본 밀양의 전경이 참으로 고즈넉합니다.

 

지난 겨울에 이곳은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젊은 인부들은 나무를 베겠다고 톱질을 해대고, 동네 주민들은 공사를 막아보겠노라 나무 한 그루마다 매달렸습니다. 그러다가 몇몇은 언덕을 구르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은 참 많이도 추운 겨울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근처에 있는 127번 철탑부지에 도착했습니다. 포크레인 한 대와 천막 세 동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765kV OUT' 라고 적힌 티셔츠를 똑같이 입은 할머니 세 분이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이 85세라고 하시네요.

 

워낙 외지고 들어오기도 힘든 곳이라서 한번 올라오면 이틀, 사흘 정도 묵었다가 내려가신답니다. 지난 해 11월 처음 이곳에 천막을 쳤을 때는 춥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지낼 만 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칠순, 팔순의 어르신들이 감내하기에는 참으로 고단한 나날임이 분명합니다. 내 집, 내 방을 두고 이렇게 산 속에서 천막살이를 하게 만드는 참으로 대단한 대한민국에 뭘 어떻게 해 줘야 할까요?

 

죄송함에 걱정까지 더해져서 발걸음이 무겁기만 한데 문득 포크레인 바퀴 위에 당당하게 얹혀 있는 요강에 눈길이 딱 멈췄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땅을 파고 사람들을 위협했을 녀석인데, 할머니들 손아귀에 들어오니 요강 받침 신세가 됐습니다. 곧 한전도 저리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 ...

 

자주 찾아오겠노라 약속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도울 수 있을지, 과연 한 가닥이라도 거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밀양을 바라보고, 밀양과 소식을 나누고, 밀양의 얘기를 듣고 퍼 나르다 보면 주민들의 바람처럼 꼭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19, 한전이 밀양 주민들을 상대로 낸 부동산 가압류 신청이 기각됐다는 뉴스를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