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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보아야만 구원의 힘도 성장할것이다.

하이데거는 위험을 보아야만 구원의 힘도 성잘할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말을 신뢰합니다.
저희가 낙동강을 걷는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지요 백번 듣는것 보다 한번보는것이 
조작되고 은폐된 잘못된 정보를 관통하여 곧바로 진실을 보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낙동강이 그렇습니다. 극단의 아픔이 있는곳이지요
그리고 정부는 홍보가 부족해서 오해하고 있다고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고 있기도 한 곳입니다. 
극단의 두 주장속에서 곧바로 진실을 알수 있는 것은 그 현장을 직접 보는것입니다. 그곳에 해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낙동강을 걷습니다. 

저번주 주말에는 김해 YMCA와 창원여성회 회원님들과 함께 낙동강의 품속을 걸었습니다. 
지금 낙동강은 극단의 아픔과 아름다움이 함께 품고 있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개비리길이 품고 있는 절경

낙동강의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두가지가 보입니다.
하나는 아름다움이고 하나는 파괴로 인한 아픔입니다.

강의 한편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봄이 무르익어 여름으로 너머가는 지금,
낙동강이 품고 있는 강 주변 생명들은 꽃을 피우고 잎을 틔워 푸르름을 더해가며 찾는이들의 몸과 마음에 평안을 주며 도시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자연이 품고 낳은 그 속에서 치유토록 해주고 있습니다. 

반면, 또한편에서는 함안보현장을 중심으로 상류와 하류지점 곳곳에서는 포크레인의 삽날로 인해 우람하게 자라난 수십년 혹은 수백년 살아온 나무와 풀들이 마구잡이로 잘리어지고, 금모래 은모래도 강에서 파헤쳐지며 함께 있어 아름답던 강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함안보 하류 사라진 농경지의모습



생성과 소멸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 그것은 아름답다 여겨질것입니다.

 하지만 낙동강 주변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인간의 헛된 욕망을 대변하는  포크레인과 파괴의 삽날은 스스로 그러한(자연) 삶을 폭력적이며 무차별적으로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소멸시키고 있어 바라보고 있으면 심한 구토가 일어날 지경입니다.  


낙동강이 품고 키운 개비리길


창아지 영아지에서 용산마을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이 길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길입니다.

이길에 들어서면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혼자 걸어야 합니다. 자기자신의 내면 깊은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지요

좁은 길은 굽이굽이 곡선을 이루고 길 곳곳의 산과 길바닥에는 마삭줄과 부처손이 집단으로 피어있습니다.
또한 이름모를 꽃과 풀들이 여기저기서 반겨줍니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여유로움과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도시인의 삶속에서 잃어버린 "사이" "공간"과의 세밀한 접속을 개비리길은 내어줍니다.  

또 한편으로는 확트인 낙동강의 푸른물결이 시원하게 반겨주기도 합니다.

강바람, 꽃, 나무, 돌, 길 그모든것이 조화롭게 이 길위에서 만나 아름다운 개비리길을 선사해줍니다.




이길을 지나 용산으로 너머오면 남강과 낙동강의 합류지점을 만나게 됩니다. 
낙동강 살리기 19공구 사업현장이라는 펼침막이 보입니다.19공구 사업이 시작되면 이곳은 파헤쳐지고 사라질것입니다.  
이렇게 굽이굽이 아름답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을 죽었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물도 맑고 그 풍경은 더욱 수려합니다.  이곳을 다시 살리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살리기 위해서 죽여야 한다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조작된 그들만의 구호들, 그 답은 현장에 있다. 

창녕과 함안보현장 곳곳에는 온갖 조작된 구호들이 진실인양 나부끼고 있습니다.


함안보현장의 거짓구호

도로옆 벽면의 거짓 구호

그렇다면 공사현장은 어떠할까요?
이것이 더 크고 행복한 변화일까요, 이것이 활짝 웃고 있는 낙동강일까요?
강물을 막고 강바닥을 파서 그곳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어 죽음의 강바닥을 만들고 거대한 댐을 건설하는것이 행복한 변화일까요, 이곳에 댐이 만들어진다고 과연 주변의 주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까요?
3300억이 들어가는 이곳현장에는 도대체 몇명의 주민들이 이사업에 참여하고 있을까요, 이곳에서는 몇명이나 일자리를 창출했을까요
사람보다는 기계가 일을 하는 시절입니다.
노동력은 최소로 하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에 일자리 창출은 남의 이야기입니다.

13가구 임해진 마을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함안보 옆 수생태계가 1등급에 가까운 둔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금모래 은모래를 싣고 나르는 트럭의 행렬은 장례행렬 같습니다.


죽여서 다시 살리는것보다 살아있는 그대로 치유하고 보호하면서 지켜내는것이 훨씬 이익일것입니다.
나무를 뽑아내고 다시 나무를 심고, 모래톱을 걷어내고 제방을 쌓고, 물고기를 죽여 로봇물고기를 넣는것보다 그냥 그대로 두고 살릴수 있는 수만가지 방법이 있음에도 그들은 기필코 이렇게 죽여서 다시 살리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성형을 잘해도, 자연미인을 따라갈 수 없듯이, 강 공사를 아무리 잘해도 예전만 못합니다. 그것은 선진국이라는 외국의  사례에서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다시 스스로 그러함(자연)에 대해

 얼마나 아름답고 장엄하기 까지 한가
수백년 아니 수천년 물과 바람이 만든 모래톱, 그리고 그 위에 몸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수생식물들, 그뿐인가 날아가는 새들에겐 생명을 유지하는 쉼터요 에너지원으로, 인간에겐 깨끗하고 안전을 물을 제공하는 자연 정화조로, 인위적이고 네모반듯함에 익숙해져 있는 도시인에겐 어머니 손길같은 부드러운 감성을 제공해주는 영혼의 쉼터인 이것이 바로 "스스로 그러한" 自然 인것이다.

어떻게 포크레인과 콘크리트로 이러한 모습을 만들 수 있단 말인지 도대체 알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을 몽땅 파괴하고 물로만 가득채워놓는것이 행복한 강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그 무식하고 대책없는 발상의 섬뜩함이란.

무식하면서도 용감하고 그러면서도 대책없는 정부에게 다시한번 自然(스스로 그러함)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간절히 권해본다.
또한 깨어있는 시민들과 회원님들께도 다시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파괴되고 사라지고 있는 낙동강의 현장을 가슴에 담아주십시요 한명이 그러하면 미약한 힘이지만 내가, 네가, 우리가 그렇게 하면 구원의 힘이 그만큼 커질것이고 세상이 변할것입니다. 
함께 아픔의 현장을 기록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