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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마당/주민민원

<현장보고> 신고리 5,6호기 주민설명회 다녀왔습니다.



독도는 우리땅! 원전지원금은 5km 이내 주민 몫!

이 생뚱맞은 현수막 문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신고리 원자력 5,6호기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 초안 주민설명회가 열리는 울주군 서생면에 다녀왔습니다.

2011년 9월 1일 오전9시 30분, 신규원전 설명회가 열리기 30분전에 기자회견을 하기로 하고 서울, 부산, 경주, 울산, 포항, 그리고 마창진에서 모였습니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다들 아침식사도 못하고 서둘러 갔건만, 이미 설명회장인 서생면사무소 3층 회의실에서는 원전 찬성, 원전 반대 주민들이 가득 모여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습니다. 어업인들은 반대하고 있어 오늘 날잡고 제대로 맞부닥쳤나 봅니다.



주민들을 뒤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지난 주에 들렀을 때는 험악한 분위기라서 기자회견도 못하고 밀려날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는데, 원전 찬성 주민들은 이미 회의실에서 격정적인 논쟁 중이라서 예상보다 수월하게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한참 기자회견 중인데 면사무소에서 제법 많은 주민들이 나옵니다.
 
"이제 가란다, 고마 가자" 양산을 받쳐들고 느릿느릿 걸어오시는 할머니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어느 편인지 모르겠지만 - 이미 편이 갈라져버린 마을이라 이런 말도 안되는 표현을 쑵니다만 -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지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환경단체 기자회견을 보고 가라고 발길을 붙잡는 주민도 있습니다. 꼭 듣고 가시라고, 지금 저사람들이 하는 말이 진짜라고 마이크 소리를 덮을 만큼 큰 목소리로 주민들을 붙잡습니다. 덕분에 간만에 사람들이 제법 모인 속에서 기자회견을 마쳤습니다.


아침부터 만원이었던 설명회장은 여전히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등과 뒷통수만 잔뜩 찍힙니다. 계단까지 들어찬 실내는 무더운 날씨에 빵빵하게 틀어댄 에어컨도 소용없었습니다.

2층 계단에서 멀뚱거리는데 고성이 오고갑니다. 환경연합 활동가들이 설명회장으로 들어가니 찬성쪽 주민들이 막아선 모양입니다. 아주 원색적이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우리 동네에서도 자주 듣는 걸쭉한 목소리에 그냥 웃음이 났습니다.

 "너거가 주민이가?" "내 보상금 내가 지킨다는데 너거가 무슨..." "내 보상금 대신 내 주끼가?"
 "우찌 원전이 당신껍니까? 사고 나면 전국이 다 피해를 입는데"

안그래도 아침밥도 못먹어서 힘도 없는데 나 원참!
원전이 이 동네 껀가 봅니다. 국비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드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봅니다.

지난 번에 만났던 주민의 말씀으로는 원전이 들어오게 되면 500억원이, 게다가 자발적 유치를 하게 되면 추가로 380억원이 주민들 손에(?) 들어온답니다. 지금도 고리 원전단지에서 해마다 기장군에 입금되는 세수가 200억원이고, 해마다 마을지원기금이 660억원이랍니다 주민들 말로 거저먹기. 눈 먼돈, 황금알입니다.


설명회장에는 다른 분들이 게시길래 원전 반대 주민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간절곳으로 갔습니다.
도착하니 땡볕 아래 양산을 펴든 주민들이 모여서 한창 원전을 막자고 결의문을 낭독중이었습니다. 이들도, 저들도... 한 마을에서, 이웃한 마을에서 살고 계신 분들인데 각자 서 있는 곳이 극과 극입니다.


고리 1, 2호기가 들어선 곳은 부산시 기장군이지만 신규원전이 들어설 곳은 울산시 울주군입니다. 그런데 경계지역이라서 신규원전 예정지 반경3km에서부터 기장군과 울주군이 동시에 포함됩니다. 밥그릇 싸움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죽 쒀서 개준다는 등 온갖 비난투성이 문구가 난무했던 현수막들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노후원전 고리 1호기 폐쇄와 신규원전 5,6호기 건설 반대를 외치던 주민들이 돌아가는 너머로 섬 하나 없이 낯선 동해바다가 펼쳐집니다. 수평선이지요. 남해바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풍경입니다.


주민들이 돌아간 후 간절곶을 잠시 돌아봤습니다. 다시 한번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나눠준 내용없고 그림만 몇 개 인쇄된 유인물을 보니 이곳 간절곶이 신규원전 반경 5km 지점에 딱 걸려있습니다.
해맞이 명소 간절곶의 풍경이 갑자기 서러워 보입니다.


언젠가 1박2일에서 봤었던, 우리나리에서 가장 큰 우체통이라는 소망우체통에 들어가 소망엽서를 적었습니다. 새벽같이 나서느라 어젯밤에 외할머니집에 보낸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잔뜩 담은 엽서 한통 써서 넣고 나왔더니 배종혁 의장님께서 우체통 그늘에 앉아서 엽서를 적고 계십니다. 한 통은 사랑하는 순자씨(사모님성함)에게, 한통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소망엽서입니다.

간절곶을 한바퀴 돌고 나왔는데도 설명회는 진행중이랍니다. 다시 설명회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핵심은 그거지요, 엉망이라는거, 4대강사업처럼 이번 환경영향평가도 자기들이 하고싶은대로 했다는 거 확인했습니다.

신규원전 환경영향평가 내용에 노심용융, 후쿠시마처럼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사고는 아예 없답니다. 그런 사고가 날 리 없다고 홀랑 빼버렸답니다.
겁 상실!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최대한 반영해도 모자랄 판에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장난질인지 그냥 입만 딱 벌어집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정신없고 개념없는 인간들에게 원전을, 우리의 생명과 미래를 강탈당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근처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00해수욕장인데 - 이름 잊어버렸음 - 역시나 저 너머로 원전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래 도시락은 한수원에서 주민들에게 막 돌린 1만5천원짜리 도시락 세트!
배종혁의장님을 마을 주민으로 알고 챙겨주더랍니다. 덕분에 점심값은 아꼈습니다.

이걸 보던 활동가 한 분이 먹고 제하겠다고 걱정하시던데,,,, 체한 것 같습니다.
감부장님이 단단히 탈이 났습니다. 옆에서 끅끅 거리고 화장실에 들락거립니다.

이것 말고도 강화유리로 만든 밀폐용기 세트도 주민들 손에 거득하니 쥐어서 보냈습니다.
 이게 원전의 맛! 인가 봅니다. 공짜로 내 손에 막 쥐어주는 거! 근데 그거 정말 독약입니다.
나만 죽는게 아니라 나도 죽고 이웃도 죽고 대한민국 다 죽이는 독약덩어립니다.

하지만 이 도시락 싹 억어치웠습니다. 우리 세금으로 저네들이 생색내면서 산건데 아까워서, 그리고 남기면 음식물쓰레기 되니까 다 먹었습니다. 아래는 동네에 내결린 현수막들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반대하는 것은 찬성에 묻히기 마련인가 봅니다.

우리도 한번쯤은 찬성하는 현수막을 걸고 싶습니다. 이런 것도 좋겠습니다.

"고리1호기 폐쇄를 정말로, 진짜로, 억수로 환영한다."
"신규원전 포기, 정말 잘했다. 복 받을기다."


지금 막 한수원에서 준 도시락먹고 배탈난 감병만 부장님, 늦은 조퇴했습니다.
나의 퇴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비장한 한 마디 남겼습니다.

 


작성 : 마창진환경연합 김은경